'사피엔스'를 저술한 저자는 미래의 인간에 대하여 "인간 속에 신"이라는 의미인 호모데우스의 도래를 전망합니다.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유사 사례로 과거 엘빈 토플러의 대표서적에서 정보 및 지식사회에 대한 통찰력이 현재에 잘 반영되어 온 사실을 비추어 본다면, 이번 책을 무시하고 지나가기 보다는 한번쯤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이 책은 방대한 Page로 구성되었지만, 이미 "사피엔스"에서 기 언급한 내용이 다시 반복되는 점도 있어 가볍게 읽어보고, 현재와 과거를 다시 생각해 본 후에 우리의 미래를 한번쯤 조망해 본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책입니다.
21세기, 인간은 불멸, 행복, 신성을 추구할 것이라는 예측을 합니다. 과거에 인류의 가장 큰 재앙은 인구를 축소시킨 사건으로 즉 기아, 전염병, 전쟁이었습니다. 이런 사건이 있으면 신이 기적을 내려 구제해 줄 것을 빌었으나, 현대의 많은 인간들은 이를 통제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하고 합니다. 그래도 아직도 통제 불가한 공포를 만드는 것이 있다면 테러인데, 테러범은 끔직한 폭력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우리의 상상력을 사로 잡고, 우리로 하여금 중세의 혼돈 속으로 뒷걸음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쇼를 연출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또 다른 문제는 오염,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 등이 있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해 아직도 경제적, 정치적으로 희생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이런 와중에 인간의 수명은 개선되었고, 인간은 더 큰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10년 단위로 손, 눈, 뇌의 성능을 높이는 개조시술이 생길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신을 숭배하는 것은 시간낭비이고, 사후세계는 없으며, 행복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다"라고 했는데, 현재의 인류가 세속의 행복을 좇는 것을 예언한 듯합니다.
'호모데우스'의 가장 큰 요점 중에 하나는 인간의 감각 및 감정이 곧 알고리즘이다는 주장입니다.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며, 현재는 유기물과 무기체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는 현상이 발생되고 있고, 인간이 알고리즘에 따라 판단하고 이해하는 AI가 자아를 느낀다고 생각한다면, 그 순간부터 인간은 불안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결정의 권한이 인간으로부터 네트워크로 연결된 알고리즘을 갖춘 컴퓨터로 이동한다면, 우리의 의식으로 결정한 내용과 컴퓨터의 네트워크로 결정한 것과 차이를 느끼지 못하든가, 혹은 빅데이터에 근거한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컴퓨터의 결정이 우수한 사례를 보면 인간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뛰어난 것은 낯선 사람들과도 유연한 방식으로 협력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간들 사이에도 더 유연하게 협력한 조직이 다른 조직(국가)을 이겼습니다. 예를 들어 잘 훈련된 군대를 보유한 로마가 그리스를 이겼고, 모든 전쟁에서 무질서한 대중을 지배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런 대규모의 위계질서와 협력 네트워크가 가능한 이유는 상상의 질서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기반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믿지 않을 수 없을 때까지 상호확증을 거듭하여 의미의 그물망을 팽팽하게 만들면 협업의 그물망이 생깁니다. 몇 십년 혹은 몇 백년 간의 의미의 그물망(예를 들면, 공동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신화, 십자군의 정당성, 사회주의 혁명, 인권운동 등)이 만들어지고 또 풀어지고, 새로운 그물망이 만들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바로 역사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의 그물망들이 생기고 풀리는 것을 지켜보고 것이며, 한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것이 후대에서 완전히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그런 그물망을 만들 수 있는 이유는 사피엔스가 비현실적인 것을 상상하고 문자가 발명된 후에는 더 복잡한 이야기를 지어 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승리가 예상되는 판단들이 번식을 통해 전달되어 알고리즘의 형태로 진화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삶, 의식, 감정, 감각이 알고리즘으로 인식하는 순간부터 이런 알고리즘을 비슷하게 하는 컴퓨터가 빅데이터에 근거한 정확한 알고리즘으로 강력하게 장착을 한다면, 인간을 넘어 설 수 있다는 불안이 엄습하게 됩니다. 이런 미래가 가능함에도 살아 남은 인간은 바로 "호모데우스"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찌 보면 인간과 컴퓨터를 구별하지 못하는데 생명공학과 컴퓨터 알고리즘의 힘을 빌려서 영생하면서 평범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능력을 갖춘 초인간이 탄생할 것이라고 전망입니다.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평범하게 살기도 쉽지 않을 세상을 상상하니, 미래는 밝지만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런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미래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지나간 역사를 볼 때 존재하는 단 하나의 위대한 상수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이다" 라고 하니 어떻게 우리 인류가 미래를 끌고 갈 것인가의 상수는 아직 우리가 결정할 위치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인간은 2개의 자아가 있다는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가 있다고 합니다. 좌뇌와 우뇌는 다른 역할을 합니다. 오른손은 좌뇌가 지배합니다. 좌뇌는 언어를 담당합니다. 우뇌는 시각과 형상 즉 순간적인 현상을 인식합니다. 좌뇌는 우뇌가 순간적으로 인식한 것을 언어로 변환하는데 정확하게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좌뇌에는 언어를 말하는 능력과 내면의 통역사가 있기 때문에 해석이 안 되는 현상이 있다면 그렇듯 하게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합니다. 많은 신화들이 허구로 짜여진 교리로 인간들 간의 협력을 돕기도 했으니, 나쁘지만 않았다고 봅니다.
역사를 살피면 누가 경제를 통제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더 이상 고대 문헌과 환몽을 조사하는 일보다 당대의 기술적 경제적 현실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쏟았고, 누가 경제를 지배할 것인가에 대한 통찰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사람들이 겪게 될 자본주의의 미래경험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통찰력을 이야기함으로써 정치적, 경제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고, 예언한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정당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봅니다.
중세에 종교로 사회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다가 종교개혁 등 사회의 혼돈과 붕괴를 막아주고, 무의미하고 무법적인 인간존재에서 해독제를 제공한 것은 인본주의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장자크 루소는 "에밀"에서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려라 자신에게 충실해라. 자신을 믿어라,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라. 자신이 좋다고 느끼는 것을 해라" 경험 속에서 자신이 원하던 감각, 감정, 생각을 이해 할 것을 주장합니다. 지금, 우리는 미래를 두려운 시각으로 쳐다보고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미래는 초인간과 데이터교의 등장입니다. 이제 21세기의 주력분야는 생명공학과 컴퓨터 알고리즘의 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몸, 뇌, 마음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몸과 뇌를 설계를 할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의 격차는 더 클 것이고, 새로운 초인간은 전대미문의 능력과 전례 없는 창의력을 지닐 것입니다. 그 힘을 이용하여 세계적으로 중요한 대다수의 결정을 계속 내릴 것이며, 또한 시스템의 유지보수를 담당 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도래하는 시대에 새로운 기술종교들은 알고리즘과 유전자를 통해 구원을 약속함으로써 세계를 정복 할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합니다.
다음은 테이터교입니다. 자본주의는 데이터를 서로 나누어 분업으로 처리하는 반면에 공산주의는 중앙에서 모두 일괄 처리했고, 소련의 공산주의는 중앙집중 경제체제가 붕괴로 사라졌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데이터를 통해 본질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 경쟁 메카니즘입니다. 현재 대형 투자자의 주식투자는 컴퓨터가 알고리즘에 맞추어 자동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의 데이터교는 가능한 한 많은 매체와 연결해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테이터의 흐름을 극대화 할 것입니다. 연결되기를 원하지 않는 이단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인간 외 모든 것)을 시스템(만물 인터넷)에 연결하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죄악은 데이터의 흐름을 차단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일기를 쓰지 않는데, 새로운 모토는 "경험하면 기록하라. 기록하면 업로드 하라, 업로드라면 공유하라" 입니다. 과거의 신 중심의 세계에서 현재의 인본주의인 인간중심적 세계관에서 미래는 데이터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하면서 인간을 밀어낼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구라는 공간에서 인간과 같이 생존하는 많은 동식물들, 심지어 스스로 자각하고 언어를 사용하는 고등 동물들까지 인간은 함부로 대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역사로 남겼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착취에 대한 반성보다는 더 큰 탐욕과 이익을 위해 지금도 많은 비윤리적 실험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영생을 탐하는 초인간의 등장도 같은 모습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영생을 위해 우리와 다른 알고리즘을 갖게 된 새로운 종인 호모데우스의 탄생은 유쾌하지 않는 미래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하여 자본주의 폐단을 예언함으로써 극단적으로 예상한 자본주의가 스스로 수정하고 자정을 하였듯이 이제는 컴퓨터가 독립적 형태의 알고리즘을 형성하여 독립적인 판단으로 행동하는 것을 제어하는 것에 대한 경고을 하고, 또 이를 이용하여 다시 태어나게 될 초인간을 경고함으로써 약자가 될 인간을 Care할 수 있는 시스템이 무엇인지 이제부터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주변에 미래가 요구하는 선도 사업이 있다면 그것을 참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최근에 Big Data를 이용하여 설비운전의 알고리즘을 파악하여 인간이 가지는 휴먼에러를 잡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안전사고도 유형별로 컴퓨터를 통한 알고리즘을 확보하면 많이 차단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컴퓨터에 인류와 같이 생존하는 동식물들에 대한 생존권을 인정하는 판단 알고리즘을 정착해야 하며, 마찬가지로 매래에는 초인간이 평범한 인류의 생존권을 인정하는 알고리즘을 보장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