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시백이 지은 '조선왕조실록(1~20권)'을 읽어보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임금이 권력유지를 위해 했던 많은 일을 되새겨 보면 현재 돌아가는 많은 이해관계자의 역학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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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찾아 읽게 되는 기회는 보통 만남 그리고 선택이 있어야 합니다. 만남은 우연히 발생하기도 하고, 의도적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책을 통한 간접적 만남도 있습니다. 제가 조선왕조실록를 읽어보고 느낀 감정을 표현하지면 지금이 이 시대를 살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특히 조선왕조 시대의 리더인 정부 관리자(신하)들은 일을 추진하는 것에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걸어야 했고, 잘하고 못함의 결과는 표면적으로는 대의명분과 논리가 있었지만, 내부적으로 신하의 생사는 최고 권력자인 왕의 마음에 달려 있었습니다. 이에 반하여 왕이 추구하는 최고 가치는 자신의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한 세력간의 균형을 맞추어, 서로 간에 충성 경쟁을 하도록 하였고, 이 과정에 많은 신하(관리자)들이 죽고 또는 교체되고 하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관리자의 최고의 처세술은 "용기 또는 잘난 척을 하지 말라. 그럼 위기에 혼자서 처리해야 하고, 고립되어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자세를 낮추고 겸손해야 한다"입니다. 이런 처세술은 요즘의 경영이념, 핵심가치와 상반되는 것이 같지만, 아직도 회사내 사교와 무난함에는 필수적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현대 잘나는 회사는 소신있는 능력자를 우대하기에 현대 시대에서 추구하는 삶에 함께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처세술은 본질적으로 자기 이기주의에 가깝습니다
실록 속의 정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바보가 왕이 되어도 돌아가는 국가시스템을 구축" 멋지 발상이라는 생각이 됩니다. 영국의 의회민주정치가 생각납니다. 정도전이 태종에게 피살되면서 이런 조선 왕조의 방향이 왕권 강화쪽으로 바뀌게 됩니다. 태종을 보면 "명분이란 행동한 뒤에 적당히 만들수 있지만, 행동은 때를 놓치면 어려운 법, 상대가 방심하는 순간이 기회가 된다". 나쁜 일을 하고도 명분을 만들고, 상대를 방심하게 하면서 또 순간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추진력으로 왕권을 강화합니다. 그런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태종은 신하인 하륜의 웬만한 부정부패는 눈감아 주고 또 비슷한 어느 권문세가의 불충은 사소하다 할자라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하륜은 권력보다 돈에 관심이 있는 듯 헛점을 노출함으로 태종에게 소인배로 보임으로써 위험을 필할 수있는 묘책을 강구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음 이야기로 연산군이 절대왕권을 만드는 방법으로 "때로는 자신을 낮추고, 때로는 책임을 지고 누구를 보호하여 충성심을 만들어내고, 때로는 다른 힘을 빌려 다른 힘을 제거하여 신하들의 전체 세력을 약화시켰습니다. 즉 신하들끼리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면, 눈치를 보면서 저쪽을 편들어 이쪽을 죽이고 반대로 이쪽을 편들어 저쪽을 죽였다 하면서 신하들의 세력을 없애고, 왕의 의중과 판단에 신하들의 언행을 구속을 시켜 왕권을 강화합니다." 요즘에 그렇게 하면 완전 상갑질이 되죠. 연산군은 사람들을 죽이는 권한을 갖춘 갑질 중에 상갑입니다. 특히 연산군은 자신의 숙청으로 계속 정권을 유지하지만 계속 신하들을 살상하는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해 신하들을 잡아들이면 잡힌 신하가 주동자에게 죽은 사람들의 죄를 전가 시키면 살려주는 것으로 정치적 살상 딜레마를 벗어났습니다. 연산군이 왕으로 할 수 있는 모든 향락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왕은 신하보다 위에 있고 생사를 결정권까지 있음을 당연시 했으며, 신하는 왕을 넘볼 수 없어 순응하게 됩니다. 연산군의 실수는 신하들이 실수를 반성하면 꼭 복직시키든가 아니면 걱정이 없도록 조치해야 하는데 그렇지 하지 못해서 실력자들이 죄를 지어 불안함에 불구하고, 장시간 방치하여 반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찌 보면 허술한 왕권 유지의 메카니즘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왕이 권위가 떨어지게 하는 말은 이래도 "그렇지 뭐" 저래도 "그렇지 뭐"라고 하면 됩니다. 연산군의 사례에서 볼 때 왕의 권위를 만들려면 명문과 원칙을 분명히 하여, 아무리 아끼는 것도 벌하는 중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실력자가 기준에 맞추어 자신의 일을 소신껏 하고, 그 일이 왕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벌을 받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소신 껏 일할 수 있습니다. 왕이 나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아야 배반하지 않습니다.
다음은 조광조 이야기입니다.
조광조는 "사서삼경은 달달외어도 기본이 되는 소학의 내용을 실천하지 않는 당시의 현실에 기본을 바로 세워야 한다 것과 과거 보다는 현재를 바로 보는 역량을 중시했습니다. " 그의 뜻을 같이한 중종도 "마음으로 뜻을 세운다면 요순탕무가 다스리듯 할 수 있고, 아랫사람을 진작시킴은 윗사람에 달린 것이니, 윗사람이 덕을 쌓아 감동시킨다면 아랫사람도 감동되어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고, 늘 덕을 쌓을 때는 근본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조광조와 중종은 생각이 비슷하였기에 과감한 개혁정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광조가 왕이 아끼는 것을 명분을 위해 빼앗은 이후로는 중종의 사랑은 사라지고 이것으로 조광조의 몰락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조광조의 사례를 볼때 일하는 생각, 추진하는 방향과 행동이 비슷하다고 할지라도 윗 사람이 아끼는 것을 없애든가 혹은 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것이 얼마나 당시에는 큰 위험이 있었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음은 명종시절 이언적이 남긴 진수필규(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여덟가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도리를 밝히는 일, ② 근본을 세우는 일, ③ 하늘의 덕을 본 받는 일, ④ 전대의 성인을 본 받는 일, ⑤ 총명의 범위를 넓히는 일, ⑥ 어진 정치를 베푸는 일, ⑦ 천심에 순응하는 일, (⑧ 중화 극진히 하는 일) 이중에서 8번째는 제쳐두고, 간단히 요약하면 바름을 알고 실천해야 하며, 이를 위해 성인을 본받고 배워서 총명해야 합니다. 바른 정신에 입각해서 베푸는 정치를 해야하며, 그렇게 함도 불구하고 백성의 마음을 잘 살펴 순응해야 합니다.
다음은 명종시절의 이황을 살펴보면 이황은 사단칠정을 논하였는데, 사단(측은, 수오, 사양, 시비)는 이가 발한 것이고, 칠정(희노애락애오욕)은 기가 발한 것이라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는 도덕적 양심이라고 볼 수 있고, 기는 마음의 굴곡이라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어찌보면 이런 공부는 요즘의 심리학과 비슷하고, 과학이 아닌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을 그의 문하생들은 암기하고 답습하기 바쁘니, 어찌보면 생각을 하지 않는 답습은 시간낭비의 학문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이 분야는 답이 없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책을 통하여 대단한 분이구나 하고 느낌을 받은 위인이 "율곡 이이"입니다. 이이는 "역사 바로 세우기" 즉 과거를 바로 세우고 평가해야 미래가 밝을 수 있다고 했으며 그가 주장한 생각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학문에 정성을 다하라. 어진이를 널리 불러써라. 백성을 사랑하라.
둘째, 지난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대신과 백성들에게 새롭게 기준(거듭하여 단단히 타이름)을 제시하여 기강을 세워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
셋째, 나라가 무너 질 지경에 경장(변화시켜서 강화시켜라)이 필요하다. 경장을 이루려면 임금이 그 필요성을 통감하고 뜻을 굳게 세워야 한다. 그런 연후에 유능한 인재들을 배치하고, 낡은 법을 고쳐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킨다. 백성이 안정되어야 국부가 늘어나고, 국방력을 제고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 할 수 있다.
넷째, 이황은 학문을 참으로 아는 사람이나 자품과 정신이 옛 사람에게 미치지 못한듯하다 그래서 부족하다
다섯째, 무릇 임금은 구중에 계셔도 참다운 덕이 있다고 느끼면, 백성들이 사방에서 감동하는 법이다
특히 세번째 글을 보고 진정한 애국자이자 어떻게 나라를 강하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임금이 필요성을 통감하고 뜻을 굳게 세워 인재를 배치하고, 또 법을 바로 잡아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면 국부가 늘어난다는 것에서 현재의 정치가들이 국민을 위한 법을 무시하고, 자기 집단의 이익에 집착하는 현실을 보면 율곡에게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임진왜란 전의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떠나서는 사고 자체를 못하는 시대였습니다. 암기를 하지만 사고하지 못하고 현실을 구제하지 못했던 당시에 율곡은 진정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자한 선지자이며 당시의 왕조정치의 한계를 고려해 볼 때 군계일학의 정신적 역량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존경받아야 할 인물로 세종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의 역사관은 왕의 언행을 통하여 왕조를 유지하기 위한 왕과 신하간에 무엇이 바르지에 대한 좁은 구간내의 이루어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 사건을 만들어간 왕과 신하간의 바르고 그른지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의 언행의 기록인데 어째 되었건 간에 역사의 목적은 왕조 유지입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역사적 기준과 많이 대립이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조선왕조실록의 역사적 가치에서 생각해서 보면 왕조 보존을 위한 권모술수의 기록이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세종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였고 한글을 창제한 역사적인 역할을 한 성군입니다. 조선이라는 왕조에 그나마 존재의 유일한 이유가 있었다면 세종이 있었기에 다행입니다.
다음으로 이순신, 선조, 유성룡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순신은 휘하 장수와 생각을 같이하는 소통을 잘하여 환상적인 조직력을 만들수 있어 백전백승하는 장수입니다. 선조는 옹졸한 인물로 자기와 대비되는 이순신을 깍아내리기 위해 원균을 치켜 세우고 이순신의 공도 명나라에 돌려 자기 기분에 맞추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선조는 자신의 바르지 못한 정치가 뛰어난 신하의 공과 비교되기를 특히 싫어 했던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순신이 진정하게 우리 민족을 왜구의 노예로 전락하는 절명의 위기에 구해낸 역사의 위인임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위기에서 이순신을 도왔다는 유성룡은 주변에 정황이 맞는 판단에 빨랐고, 왕의 마음을 읽고 보신주의의 역량이 뛰어났습니다. 특히 이순신을 구해도 주었지만, 이순신을 모함을 할 때 왕의 마음을 읽고 한 배를 탄 것을 모면 윗선의 마음을 읽고 행하는데 뛰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광해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임진왜란 후에 외교는 현실감이 있으나, 자신의 정통성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고, 못숨이 위태한 사항을 이겨내기 위해 무수한 옥사를 일으키고, 무고한 많은 사람을 죽여 공포정치를 하였습니다. 광해군은 이일을 이이첨을 행동대장으로 하여 진행하되, 이이첨을 통제하지 못하게 됩니다. 즉 세력간의 힘의 균형을 잘 유지하지 못하여 자신도 원한을 통한 인조반정의 희생양이 됩니다. 왕도 위협을 받지만, 조선왕조의 신하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알려주는 내용으로 숙종시절 김수향이 사사되기 전 후손에 남긴 말입니다. "내가 덕이 없음에도 은덕을 후하게 입었고, 지위를 탐내 분수에 넘쳐 스스로 재앙을 불렀다. 자손은 나를 경계 삼아 항상 겸퇴의 뜻을 간직해 가정에 있을 때는 힘써 공손함과 겸손함을 실천하고, 벼슬은 요직을 멀리하여 가정을 보호하라"
조선 말기의 시대흐름을 볼때는 개화를 해야하는 목표는 있었으나, 어떻게 해야 하는 방도는 구체적이지 못했고, 또한 현실적이지 못했습니다. 농민이 중심이 된 동학 봉기가 성공 못한 이유는 봉기를 하되 싸움은 식량과 전술이 필요한데 준비하지 못했고, 근대의 무기에 맞는 전술(게릴라전 또는 합동작전 등)과 전략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조선의 마지막 왕들과 일부 개화파가 주도적으로 추진한 근대화는 자신의 왕권 또는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진행하여 효과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많은 사람이 따라주는 기준을 제시하여, 부국으로 흐르도록 가치관을 먼저 만들지 못하였기에 민중의 지지가 없는 근대화는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일본과의 을사조약이 맺어지고 일명 회사로 말하면 법정관리가 됩니다. 재무적으로 모든 것을 자력으로 하지 못하니, 이 시대의 흐름을 돌아보면 을사조약으로 나라없는 우리 조상의 당시 고통을 통절하게 느꼈집니다. 이런 상태의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계속 지속되었다면, 현재의 우리의 삶은 평등은 사라지고 픽박 받는 상태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행스럽게 2차 세계대전으로 일본 패망은 얼마나 우리에게 다행스러운 사건이지 다시금 안도하게 됩니다.
끝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어보니, 우리의 이렇게 존재하게 된 확률을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역사적으로 현재와 같은 이렇게 평온한 시대가 없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게다가 의료기술의 발달로 더 오래 더 젊게 살게 되는 세상의 시작점이 될 것이고, 이런 시대에 살고 있음에 행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래의 목표는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롭고 정의롭게 살아야 할 사회 시스템이 잘 마련되어야 한다는 우리들의 책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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